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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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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성암국제고(박예원) 개최일 2022-09-14 조회 752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고 

                                    

 성암국제무역고등학교 

1학년 5반 박예원


 ‘우리는 한 겨레이다.’ 겨레, 같은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무리라는 말이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말을 쓰며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간다. 하나 지금 우리의 민족이 저 먼 38선 너머에 있어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 나는 그저 가슴 한쪽이 아련할 뿐이다. 우리는 대한사람의 의무를 지고 안창호 의사,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김구 선생, 이런 독립운동가분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통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는 이들이 남긴 지식과 경험을 통해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이요, 그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우리나라를 위해 몸을 내놓았던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 김구 선생의 일생을 볼 수 있다. 본래 상권은 독립운동을 위하여 해외에 있던 김구 선생이 본국에 있는 아직 어린 두 아들에게 선생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당장 들려줄 수 없기에, 장래에 보여주기 위해 유서 대신을 쓴 것이다. 그 후 목숨을 부지하셨던 김구 선생은 동포들에게 자신의 분투 과정을 알려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하권을 쓰신 것이다. 이러한 백범일지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와 그들이 만들려 노력하고 꿈꿔왔던 민주주의 국가의 자손들, 우리에게 지혜가 되어준다.

 

 상권의 흐름은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과 가정, 청년 시절 옥에 갇혔던 이야기와 그 후 방랑했던 일,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돌입하였던 이야기가 적혀있다. 떡을 사 먹으러 아버지의 돈을 가져갔다가 호되게 매를 맞은 일, 계곡에 파란 물감을 풀어놓았다가 어머니께 혼났던 일, 이런 김구 선생님의 철없던 어린 시절을 접하고 나서 나는 조금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년 시절의 김구 선생님은 그렇게 절망적일 수 없었다. 김구 선생은 이 시대의 마지막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실망하여 돌아온다. 부패했던 그 시기의 과거란, 진사와 급제는 미리 정해놓고 과거는 나중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풍수와 관상을 공부하던 김구 선생은 자신의 관상에 더욱이 절망스러워하다 <마의상서> 중 있는 다음 구절에 감명받아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한다.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김구 선생은 이후 동학에 입도하여 배우다가 동학군의 성봉장으로 해주성을 공략하였다. 이 자서전에는 김구 선생 스스로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을 낮추는 말이 많이 적혀있는데, 나도 마의상서의 저 구절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구 선생은 데라우치 총독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옥에 갇혀있을 당시, 극심한 배고픔에 아내가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적혀있으며, 또한 생애 가정에도, 부모에게도 소홀하였고 두 번이나 옥에 갇혀 어머니께 수발을 들게 하였으니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김구 자신도 이것을 알고 가슴 아파한다. 나와 다른, 일제강점기 시대에서 가족과 아내, 자식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느꼈다.


 김구 선생은 두 번이나 옥에 갇혀 살았는데, 한 번은 국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 치하포에서 일본인 한 명을 죽인 일이고, 한 번은 위 총독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이다, 두 번이나 옥에 갇혔다가 감형을 당하고도 탈옥을 하며, 그러고도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 아닐 리 없다. 옥에 갇혀 왜놈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일을 읽은 나는 역겨워서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시체를 나라의 벽과 땅으로 삼아서 지금 대한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권은 삼일 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세우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일들이 적혀있다. 나는 하권을 읽으며 중학교에서 배웠던 역사 수업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역사를 배웠다면 도시락 폭탄을 알 것이다. 백범일지를 읽으며 이봉창 열사와 윤봉길 열사의 일의 전후와 이야기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희생과 노력에도 같은 민족끼리 공산당과 민주주의로 나뉘어 결합이 되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허무하게도 전쟁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1945815일 식민지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뉜 분단국가가 되었다. 나는, 우리는 대한의 젊은이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


 나는 종교란 평생에 꼭 하나만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김구 선생은 청년 시절엔 동학을 믿다가 불교로 가서 중이 되었다가, 항일운동을 할 때는 예수를 믿었다. 여러 종교를 배웠던 김구 선생이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철학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우리는 한 종교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하권 끝자락의 구절을 빌리면 이렇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된다.’ 김구 선생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가 가장 무섭다 하였고,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라 하였다. 나는 과연 지금의 우리나라가 김구 선생이 바라던 우리나라가 되었는지, 아직 덜 자란 나의 작은 머리로는 알 수가 없다. 백범일지의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빌린다면 나는 통일을 향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곧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가장 감명받은 구절 중 하나였다. 평소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지는 않았나, 부끄럽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 이기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통일하여 새로운 문화의 구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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