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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지기] 어떤 발자취를 남길 것인가: <김구, 마음을 전하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11-21 조회 66
첨부파일 Screenshot 2022-11-21 at 13.44.18.JPG


어떤 발자취를 남길 것인가: <김구, 마음을 전하다>

2022 백범김구기념관 서포터즈

백범지기 이화연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옆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특별전 ‘김구, 마음을 전하다’를 열었다. 이번 전시는 김구 선생이 직접 쓴 휘호 39점과 백범일지 초판본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활동했던 그의 사진이나 영상 자료 등을 시간 순으로 함께 선보였다. 특히 ‘홍익인간’, ‘답설’, ‘서해맹산’, ‘독립만세’ 등의 휘호는 처음 일반에 공개되어 선생의 필체와 그에 담긴 마음을 느껴보는 경험을 선사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해방 후 1946년 인천 감옥에 갇혀있던 시기에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동료 김주경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강화도 김주경 자택 인근 합일초등학교에서 강연하고 남긴 휘호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입은 총상의 후유증으로 수전증을 앓았던 그의 필치는 떨림이 있지만, 한 자 한 자 끝까지 그어나간 강직한 획이 돋보인다.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국조(國祖) 단군이 세운 건국이념이다. 모든 백성이 사랑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뤄 살아가자는 의미는 한 나라의 이념이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백범일지에서도 이 정신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보면,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충분하다.”며 그보단 문화의 힘을 갖는 국가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문화의 힘을 위시한 이유에 김구 선생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밝혀두고 있다. 즉, 선생이 그린 나라는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를 담보하는 나라였다. 이는 한국의 국가 철학이 집단 이기주의나 제국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대의의 단초를 마련해 주고 있다.





'답설’은 오늘날 수백 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을 세워 독립운동을 펼쳤던 경주 이씨 6형제(건영, 석영, 철영, 회영, 시영, 호영) 중 둘째 이석영의 증손녀 김용애에게 김구 선생이 써준 휘호다. 답설은 산운 이양연(1771~1856)이 지은 시 이자 김구 선생이 생애 애송했던 시로, 해방 뒤 1948년 중학생이었던 김용애에게 준 설날 선물이었다. 



穿雪野中去 눈 밟고 들 가운데 걸어 갈 적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今朝我行跡 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국들이

遂爲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구한말 부패한 정부와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동학도인으로서,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저항하며 김구선생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새로이 남기는 사명의식을 이 시로 되새겼던 것 같다. 어느새 답설은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가 되어 동료의 자손을 거쳐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서해맹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 ‘진중음(陳中吟)’의 한 구절인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를 줄인 말이다. 



誓海魚龍動 바다에 맹서하니 어룡(魚龍)이 꿈틀대고

盟山草木知 산에 다짐하자 초목이 알아듣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겨우 16일만에 선조는 수도를 떠나 피난 갔으며, 왕의 아들들은 왜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절망적 상황에서 유구한 자연을 바라보며 조국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다짐하는 결의가 담긴 어구다. 왕도 국가도 없이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강산과 그곳에 서린 민족의 얼을 떠올리며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구 선생의 마음은 이순신 장군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독립만세’ 휘호는 양상하 전 전남대 교수에게 김구 선생이 명함과 함께 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상하 교수는 1952년부터 10년간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는 등 긴밀히 공조했다. 명함에는 편지와 금품을 잘 받았다는 김구 선생의 감사 인사가 적혀있다.

한편, 백범일지 초판본도 함께 전시됐다. 1929년 상해에서 집필했던 상권, 1934년 충칭에서 집필하기 시작해 1945년 말, 1946년초에 내용을 첨가해 완성한 하권 그리고 1947년 발표된 논문 ‘나의 소원’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 백범일지는 유서이자 자서전으로, 꾸준한 베스트셀러로 손꼽히고 있다. 12월 15일은 이 백범일지의 초판본이 도서출판 국사원에서 출간된 날이다. 백성의 백, 범부의 범을 따서 백범으로 자신의 호를 지칭했던 선생은 책 서두에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왔다”며, “내가 만일 민족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만한 것은 대한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말미에서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는” “투쟁의 정신”을 길렀지만, 이제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길 바라는 백범의 당부는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비록 전시는 11월 2일로 마무리 됐지만 그의 정신을 기리고 초판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백범일지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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