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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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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사상과 민족의 갈등선
작성자 신중기(충주대원고) 개최일 2022-05-25 조회 126

사상과 민족의 갈등선 



충주대원고등학교

1학년 3반 신중기


평소에 세계의 역사에는 국제 정서를 알 만한 좋은 기회라 여겨 관심을 가지고 책을 몇 권 편독하였으나, 한국사에는 그렇지 못하여 읽은 책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한국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것이, 관련 대중매체에서 쉽게 접하고 관심 있게 보았으니 자연히 이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범일지는 민족정신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의 생애를 볼 수 있고 독립운동의 비화 등을 볼 수 있는 뜻깊은 글임에도 일독조차 하지 않은 것을 무색하게 여겨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또한 백범은 동학을 믿으며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했고, 애국계몽운동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교육적 관점에서든, 사상적 관점에서든 한국사의 중요 인물로서 대일본제국령 조선(이하 조선)에서 대일본제국(이하 일제)에 대항해 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겼다. 이런 자의 글이라면 한국사의 이해에 있어서, 한국인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참고자료에 있어서도 많은 의미를 지녔다고 판단하였다.


먼저 책을 펴고, 저자의 말을 읽어보니 과거 신라의 무열왕, 즉 김춘추가 떠올랐다. 왜 그런가 하니 백범 선생과 과거 삼국 시대의 김춘추가 겹쳐 보였던 것이다. 비록 통일된 신라의 왕이 된 김춘추에 비해 백범의 말로가 그렇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를 김춘추에 빗대는 것이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김춘추가 강대국의 지도자 연개소문을 상대로도 신라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당의 도움뿐만이 아닌, 김춘추 자신에게도 있었다.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동반한 정변으로 권력을 잡아 반대 세력의 억압을 위해 개인적인 권력을 취했지만, 김춘추는 나라를 위해, 목숨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왜국, 당에 외교를 위한 길을 들어서며 공적인 권력을 취했던 점이 달랐고, 이런 김춘추의 공적인 권력의 용법이 신라인들을 결속시켰다. 그랬기에 일찍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고구려나 가장 먼저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한강 유역에 자신들의 세력을 오랫동안 유지한 백제가 아니라, 전성시대도 가장 늦고 왕의 권력 또한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백범이 조직만의 이익을 위하는 것처럼 비춰진 공산주의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던 점이나, 하나의 나라를 위해 공적인 행동을 하려 노력했던 점에서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김구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해 정치적 한계가 있었다고 한들, 결국 대중이 갈등 없는 평화적인 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박헌영이나 김일성, 이승만이 아닌 김구이고, 하나의 나라로 평화를 이룩한 것은 연개소문이나 의자왕이 아닌 무열왕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일제 치하 조선 시대 때 우리의 상황은 삼국 시대의 그것에 비해서 매우 복잡했지만, 상당히 닮았다. 그래서 나는 김구를 조선의 김춘추라고 말한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자의 말 속 단군기원 428이라는 연호 또한 신경이 쓰였다. 단기 자체는 민족정신의 공감이나 일제 연호에의 반발 등으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연호였지만, 백범이 단기 연호를 썼다는 사실이 아닌 연호 자체의 의미에 마음이 쓰였다. 신석기 시대가 이르러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며, 이동 생활을 하던 구석기인들과는 우리와의 관계성이 궤를 달리했다. 이후 생산력의 증대로 자본이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계급이 생기고, 흐르고 흘러 청동을 주조해 다룰 수 있을 땐 한반도에 조선이라는 집단이 형성된다. 조선은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제정일치 사회로서 기능했고, 비로소 민족정신이랄 것이 생길 수 있게 하였다. 서로의 동질성을 인식하게 된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한이라고 하지만, 단군이라는 민족의 동질성이 모일 수 있는 중심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군기원이라는 연호는 타국의 레이와 연호나 중화민국 연호와 뜻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인의 것만이 아니었을 단기 연호조차 민족정신을 일깨웠다고 평가받는 백범이 사용하니 나로 하여금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했다.


저자의 말에 쓰여 있던 대로, 상권은 백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전달하기 전, 안동 김씨로서, 또 익원공 21대손으로서, 그의 선조와 고향을 역설한다. 그가 자신의 선조에 관해 쓴 장황한 글을 보곤 현재는 많이 희미해진 족보의 의미와 조상의 개념에 대한 잡념들이 떠올랐다. 우선, 나는 평소 조상의 존재의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제사를 지내고, 성묘에 갔다. 누구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이 무덤에 누구의 육신이 묻혀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조금의 의문도 없이 그저 순응했다는 것이 떠올라 겸연스러웠고 오히려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조부모님께 사정하여 족보를 받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비록 그 족보는 그리 많이 읽히진 못하고 다시 조부모님의 자택에 있게 되었지만, 나라는 존재 이전에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있다가 사라졌다는, 나는 이 많은 생명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정말 어떻게 되어도 좋은 감상을 했던 것도 같았다.


상권에서 주목한 내용은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안명근 사건 또한 주목할 만했는데, 백범은 독립운동의 상징답다면 상징답게도 여러 번 일제의 경찰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그중에서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부분에서는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단락을 보고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경심의 깊이 자체가 달라졌다. 이는 빈말이나,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가슴 깊이 느낀 감정으로, 문제의 문단에서는 신문을 대략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하나같이 섬뜩하기가 그지없었다. 단순한 매질부터, 질식 유도나 달궈진 쇠로 온몸을 지지는 등, 없는 잘못도 만들어서 인정하는 창작물 속 인물들의 모습이 과장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러니 독립운동의 실효성은 둘째치고, 이런 야만적인 고문이 기다리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경심을 운운하기 위해선 하권이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고문의 강도는 대대적으로 독립운동이 퍼진 시점에 이를 억압하기 위해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고, 위의 고문보다 강화된 것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받았을 고문은 그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압박에도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하권의 독립운동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의무교육에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한국사의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바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그들인데, 진솔히 말하자면, 많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왜 하필 이 두 인물이 유명한가에 있어서는 늘 의문이었다. 이 의문을 갖고 백범일지를 읽으니, 대충 이유를 알 만했다. 책의 묘사에 따르면, 두 인물의 행위 이전에는 폭발이나 암살 등이 동원되는 큰 사건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비로소 이들의 행적이 한민족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극적인 방법으로 포장되기 쉬운 방법으로, 그것도 꽤나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펼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윤리적으로는 옳지 못한 일이지만서도 이들의 행위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수만도 없는 것이 참으로 역설스럽다.


사실 앞서 표현에 어렴풋이 녹아있듯이, 나는 이러한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태도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독립운동을 아무리 한다 해도, 당시 조선의 국력은 일제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역사적으로 만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만약 일제가 승전국이 됐다면 일제가 약화할 때까지는 독립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독립운동에는 우리가 일제의 뜻에 순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표하는 의의는 있었고 설령 그것이 없었더라도 승전국들이 일제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모든 피지배국을 독립시켰겠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주장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이를 받아들여 결론적으로 독립을 이루게 했으니 어떻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당시 현실이 보여주는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독립운동자들의 고통이 없게 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백범일지에서 묘사한 고문에 대한 글을 보고 일필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 결코 나는 독립운동이란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세계정세에서 조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종합적으로는 현재 일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의려를 하게 됐다. 일단 기본적으로 지배국에서는 피지배국의 역사적 원한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인 감정을 가진다고 해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점령당해야 할 존재와 같은 느낌이지, 우리와 같은 민족 단위의 반일 정서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경우는 전국민적인 얕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반일이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고, 일본국의 경우는 일부의 극단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일이 많기에 혐한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미가 길어졌지만,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이런 역사적 원한과 같은 감정은 우리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일뿐더러 성숙한 정서의 형성에는 방해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피지배국이었던 입장에서 지배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는 그런 역사의 되풀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더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이 역사적으로든 전통으로든 유사점이 많고, 문화력이 약하지는 않은 나라인 만큼 서로 힘을 합치거나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굉장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역사적 갈등이 맺어놓은 끈의 얽힘이 간단히 풀릴 일을 없겠다는 것을 백범일지에서의 일제의 만행으로 확인했지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참조해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된 미래를 신뢰하며, 가장 최선의 오늘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했다. 진보에는 항상 의심과 불안이 따라오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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