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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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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대한의 등대지기, 김구
작성자 유경령(이화여고) 개최일 2022-06-08 조회 105

 

대한의 등대지기, 김구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희반 유 경 령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9년간의 기본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나라를 지킨 독립투사들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책 겨우 몇 페이지에 이름과 업적 몇 줄만이 잠깐 등장하고 마는, 극소수의 이름이 알려진 독립투사 외에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들여다보려 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내 안에서는 이미 대한의 독립애국선열이란 달달 외워야 할 시험문제일 뿐이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77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에게 독립과 평화란 너무나 익숙한 것이 되어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등따수운 곳에서 잠들고, 평일이면 학교에 가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부모님이 내 뒤에서 버텨주고 계시기에 가능한 것이듯 항상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독립투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두렵지는 않았을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러한 나의 물음에 백범일지는 답을 해주었다.

 

두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한 아버지의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편지 속에서 김구 선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 대단한 민족의 지도자나 임시정부의 주석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였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묻어나오는 뚜렷한 애정은 그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저 나와 다른 시대를 타고났을 뿐 평범한 남자에 불과했던 김구 선생이 나와 유일하게 달랐던 점은 바로 목숨을 바쳐 이뤄내야만 했던 독립이라는 사명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비단 김구 선생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독립투사들도 그저 범인(凡人)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시 하나에 독립을 담아내며, 또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맨몸으로 뛰어들며, 또 다른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적진의 한복판에 몸을 던지며,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단하나의 목표를 위해 독립을 염원했다. 장난기 많던 어린 아이에서 한 나라의 독립에 크게 공을 세워 온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자 겨레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소년의 이야기는 내가 그가 지켜낸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했다.

 

난 책을 읽는 내내, 일제의 지배 아래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을 직접 겪었을 김구 선생의 마음을 그의 시각으로 이해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러나, 나라 잃은 슬픔을 겪어보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바로 어제까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료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포를 나는 감당해낼 수 있을까. 수많은 계획이 실패하고 희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지치지는 않았을까. 기약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실이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이 성공했기에 우리는 지금 그들에 대해 배우고 기억하고 있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단 한 줌의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해 주신 어머니의 대학 동아리의 얘기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대학시절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하셨다고 한다. 한때는 열심히 활동해서 이름을 날린 적도 있었던 유명 동아리였다. 그런데 동아리 회원들이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되어가고 각자 자신의 취업이 급해져가자 점점 활동이 흐지부지되어 동아리가 폐부될 위기에 처했다. 회원들은 모두 모여 대책을 모색해 봤지만 하나둘 지쳐갔고 결국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야.’ 라고 속으로 다들 체념하게 되었다. 끝내 동아리는 폐부 반대 서명 운동을 진행해야 하는 순간까지 왔지만 그조차도 참여하지 않은 회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동아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독립운동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동아리 활동조차 각자의 사정에 의해 제대로 유지되지 않을 때도 많은데, 자신의 가족과 생계를 유지해야했던 독립운동가들은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잠깐, ‘누가 알아준다고.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해.’라고 생각한 날에는 의지가 꺾이고 그만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항상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을 책임감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온몸을 던지고 마음을 불태워 나의 나라라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을 그토록 어렵고 힘겹게 얻어다 그 후손의 품에 안겨주었다.

 

현재에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것이란, ‘그 때 그랬어야 했는데.’하고 한마디 하는 것처럼 참 쉽지만 과거에, 당시에는 미래였을 현재를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지금에 와서는 상해 임시정부가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이루어낸 정말 대단한 기구였다고 칭송받지만 그 당시의 상해 임시정부는 얼마나 초라해보였을까. 남들이 보기엔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거센 바람 앞 위태로운 촛불 같아 보였을 것이다. 한 나라의 정부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건물에서 매일을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외로이 그러나 꿋꿋하게 희망의 불을 밝히는 애국선열들의 모습은 마치 폭풍 속의 등대 같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 속에서조차 빛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밝혀주는, 거친 파도가 덮쳐도 묵묵히 이겨내는 독립투사라는 등대지기가 있었기에 무사히 아침은 밝았고 지금의 대한이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의 후손들은 이 땅에 태어난 것 하나만으로 나의 나라라는 가장 큰 기쁨을 선물 받고 있다. 나라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나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재를 물려준 선조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난 드디어 깨달았다. 나라를 지키는 자는 하늘이 정해준 사람도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나도 나의 위치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 또한 믿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김구, 안중근, 유관순은 살아가고 있다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언제든 발 벗고 나설 자들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애국선열들께서 물려주신 평화로운 나라를 지금보다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자 한다. 김구 선생께서 한평생 오직 단하나 원했던 것은 바로 대한의 자주독립이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자주독립국이 된 대한에서 실현시키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을 이제는 우리가 계승해야만 할 때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어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으로, 의복으로, 노래로, 한류라는 강한 파도가 되어 세계를 향해 뻗어져나가고 있다. 나도 그 물결에 올라타 높은 문화의 힘으로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원을 더욱더 부강하고 풍족한 아름다운 나라로 가꾸는 정원사로써 살아가는 미래를 꿈꾼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103주년 3.1절을 며칠 앞두고 있다. 대한이 광복을 맞이한 지도 7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여전히 둘로 나뉘어져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또한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고통받았던 위안부 소녀들은 어느새 손에 주름이 가득해졌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길거리엔 붉고도 푸른 태극기들이 하나 둘씩 걸리기 시작해 끝내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시야 가득히 힘차게 펄럭인다. 사람들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날 울려 퍼졌던 만세 소리를.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아우내 장터 한복판에 서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버지께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셨던 것처럼 나도 아버지께 그날의 함성을 이어받아 나의 아이들에게 건네어 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만세소리가 거리를 넘어, 나라를 넘어, 세계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파도가 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이제 그때 그곳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치자.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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