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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KIM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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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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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효창원은 조선조 제22대 왕 정조(正祖)의 장자로 5세에 작고한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 묘소 즉 효창원(孝昌園) 자리인데, 그 후 이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조(純祖)의 후궁인 숙의박씨(淑儀朴氏) 및 숙의박씨의 소생 영온옹주(永溫翁主)를 안장한 조선왕실의 묘원(墓園)이었다.

효창원 이미지 백범 김구 선생 묘역 의열사 삼의사 묘역 임정요인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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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은 지금의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걸쳐 소나무·밤나무 등 수림이 매우 울창한 곳이었는데, 1894년 5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일본군의 주력부대가 지금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하면서 효창원의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1924년 6월 효창원의 일부를 떼어서 효창공원을 개설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의 묘소를 비롯한 모든 묘소를 모두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 서삼릉 경내로 이전함으로써 효창원은 그 의미와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제에 이토록 상처 입은 '효창원'은 그 외세와 투쟁으로 형장의 고혼이 된 대표적인 분들과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을 풍찬노숙으로 지켜낸 분들의 묘역으로 거듭남에 따라 해방공간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참배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소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1945년 11월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이하 김구 주석)는 미군정 산하 왕실재산관리처에 효창원을 선열묘역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타진케 하고, 김구 주석이 효창원 현지를 방문하여 묘역으로 결정하였다.

그1946년 7월 6일 이봉창 (李奉昌,1901~1932) · 윤봉길 (尹奉吉1908~1932) · 백정기 (白貞基,1896~1934) 의사 유골을 일본에서 봉환, 문효세자가 묻혔던 자리에 국민장으로 안장하고, 같은 장소에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허묘(虛墓;假墓)를 나란히 모셨다. 묘 석축에는 김구 주석이 쓴 '의사들의 훌륭한 공적은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리라‘라는 뜻의 유방백세(遺芳百世) 휘호를 새겨 놓았는데, 이것은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민족을 위해 생명을 던지러 떠나는 동지와 지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이후, 고국 땅에서 재회한 이승의 동지(김구)가 영혼의 동지들에게 보내는 감상이 담긴 인사로 이해되는 한편, 동포들에게 전하는 뜻이기도 하다.

1948년 9월 22일에는 임시정부주석 이동녕(李東寧, 1869~1940)선생과 동 비서장 차리석(車利錫, 1881~1945) 선생의 유골을 중국에서 봉환, 효창원 동남쪽 문효세자 모친이 묻혔던 자리에 사회장으로 안장하고, 그해 국내에서 서거한 임시정부 군무부장 조성환(曺成煥, 1875~1948) 선생도 두 분과 같은 장소에 안장하였다.

1949년 7월 5일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선생이 동지들과 혼을 같이 하겠다던 평소 유언에 따라 국민장으로 서북쪽 언덕에 모시어 일대가 선열묘역이 되었다.

그러나 특히 김구 선생의 묘소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그간 민족통일의 방책 등에서 이견을 보이던 이승만 영도하의 당시 집권세력에서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었다. 그리하여 선열묘소를 교외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부단하였는데, 그 일단으로 1959년 봄부터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 개설을 추진하였다. 이에 독립투사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 옹 등이 중심이 되어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孝昌公園先烈墓所保存會)가 결성되고, 언론사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이 비등하여 묘소 이전은 보류되었지만, 효창운동장은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 속의 연못 및 섬까지 희생시키고 끝내 1960년에 개설되었다. 이러는 동안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또다시 선열묘역을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부근으로 이전하려고 추진하였으나 역시 유족과 사회 각층의 반대로 보류되었다.

이 같은 경로를 거쳐 1972년 서울시에서 효창공원 조경사업(묘지 진입로 및 석계단 설치·외곽 주변정리·수목 조성 등)을 10개년 계획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1981년 6월 유료개방 때까지), 1977년 7월에는 건설부에서 효창공원으로 고시하였다. 1984년 12월에는 서울시의 협조로 각 묘소 앞의 묘표석(墓表石)을 새롭게 개수(改竪)하였다. 1989년 11월 의열사(義烈祠) 및 창열문(彰烈門)이 건립되고 묘역 확장과 정비가 대충 마무리되었으며, 1989년 6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