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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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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아들의 영원한 벗 아버지께
작성자 임민규(육군사관학교) 개최일 2018-09-28 조회 79

백범일지 독후감

 

육군사관학교

2학년 임민규

 

아들의 영원한 벗 아버지께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큰아들 민규입니다. 엄동설한이 불어 닥쳤던 지난 12월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신 이후, 어느 봄 날씨와도 비교할 수 없었던 저희 부자의 따뜻한 대화가 끊긴 지 벌써 5개월 차로 접어들었습니다. 숨 가쁜 생도생활 속에서 책 한권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을 때면 아버지께 어린 아이처럼 달려가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누었고, 아버지께서는 이런 저에게 따뜻한 말로써 영원한 마음의 벗이 되어주셨습니다. 책을 읽고 저의 생각을 유일하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존재 역시 아버지셨고, 그 생각들을 하나하나 존중해주셨던 분 역시 아버지셨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긴 잠에서 깨지 않고 계신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 아들의 슬픔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5개월 째 부재하고 있는 부자간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하지만,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가족 몰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그 시간들이 제겐 너무도 큰 비애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머릿속에서는 잡념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온갖 비현실적 요소들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와의 소통의 순간들을 오직 머릿속의 기억과 마음으로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스스로 매일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편지 뿐 이였고, 이를 통해 5개월 만에 아버지와 책에 대하여 정겹게 담소를 나누고자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닌 국가의 아들로서 재탄생되어야하기에 저에게 항상 강인한 정신력과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할 것을 강조하셨고, 이를 이유로 제게 많은 위인들의 자서전과 일대기를 반드시 숙지할 것을 매사 당부하셨습니다. 작년에는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책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을 성실히 따르고자 하였고, 올해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인 백범 일지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드리는 말씀에 대해 상호 의견 교환이 오가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버지께서 오늘만큼은 아들의 의견을 조금 더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저의 생각을 오늘 편지를 통해 상세히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영웅 혹은 위인들의 사건에 대한 심중에 주목하여 독서할 것을 가르쳐 주셨었습니다. 특히, 제가 육사에 입학하여 멸사봉공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군인의 길을 택한 후부터는 그 부분을 더욱 더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백범일지또한,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부분에 초점을 두어 성실히 독서하였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어릴 적, ‘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라라는 상서의 말을 바탕으로 동학접주가 되어 이른 나이부터 사회적인 활동을 지속했었습니다. 동학접주로서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였지만, 정덕현, 우종서가 김구 선생님을 시험하였던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언제나 공손한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여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인격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늘 반복적으로 강조하시던 사항이었기에 아마 이 부분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버지께서 한 번 더 강조하시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공격적인 태도에 그대로 상응하기보다는 화해적인 방법을 찾아 관계를 개선하고 진전시키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라는 것을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도 여실히 보여주신 사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도 지금의 저와 같은 나이 대에 자신의 삶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반복하고, 내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것을 일지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영웅적인 면만이 부각되어 있는 일대기와는 달리, 인물의 모든 심리적 서술이 담겨있는 자서전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과거 시험, 관상 연구, 동학 접주로 이어지는 김구 선생님의 청년시절이 이제는 과연 어떤 목적을 지향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김구 선생님의 짙은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 안 진사 댁에 머물 때 만났던 고 선생은 이와 같은 고민에 대해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보다 행하기에 힘써야 될 시기다라는 조언을 남겼고, 이는 현재의 순간에 충성을 다하여 임할 수밖에 없는 저의 현 상황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비록 실패로 이어졌지만, 김이언과의 의병 모의 등의 경험을 통하여 김구 선생님께서는 격동의 청년기를 보내셨고, 드디어 백범 김구 선생님의 가장 유명한 일화, ‘치하포 사건이 등장하였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자답과 신중한 판단을 바탕으로 왜놈을 처단하셨고,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유해각, 유해순 형제의 피신에 대한 조언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 이 한 몸 희생하여 만인을 교훈시킨다면, 죽더라도 영광이다이라는 의연하고 강건한 대장부의 자세로 스스로를 다잡으셨습니다. 저는 이 치하포 사건을 접하고 2가지 측면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방 3칸에 40명의 손님이 가득 차 있고, 왜놈의 구별이 쉽지 않은 급박한 상황에서 사건 발생 후의 예상 결과와 현재의 환경을 왜놈에 대한 적대적 의지와 완벽히 조화시켜 일을 진행하셨다는 점에서 짧은 순간에 발휘하셨던 판단력에 대해 엄청난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행한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에 대해 당당한 자세로 일관하여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내·외적인 모습을 통해 확립 하시는 모습을 보며 군인으로서 견지해야하는 자세 또한, 이와 절대적으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은 치하포 사건을 통해 김구 선생님의 무인적 기질과 그 면모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고, 뒤이어 이어졌던, 교육 운동을 통해서는 지식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가지셨던 확고한 가치관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치하포 사건이후의 옥중생활 간 4가지 부분을 직접적으로 행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셨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무한한 고통이 수반되는 옥중생활 간에도 대학과 같은 서적들을 꾸준히 독서하여, 단 한 순간도 지식인으로서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세계 각국의 정치, 문화, 제도에 대한 연구와 수용 여부에 대한 고찰도 함께 이루어내셨습니다. 또한, 지식의 확장을 자신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평균 수감자 100명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상황 속에서 진정한 교육을 통해 피교육자의 점진적 확대를 직접 실현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수감자들에 대해 소장을 지어줌으로써 소송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대서’, 수감자들과 함께 어울려 음악을 하고, 노래를 통해 소리를 내셨던 성악까지, 김구 선생님께서는 교육과 지식을 모든 가치와 덕목의 뿌리로 판단하여, 상황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험난했던 옥중생활에서까지 실천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형이 선고된 후에는, 집행일이 당도했음에도, 평소와 일관된 모습을 보이시며, 구국충정에 대한 이인의 면모를 보여주셨습니다. 옥중생활이 끝난 후에는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주력하시며, 김홍량, 최재원 등의 청년 인력들을 경성과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고, 안신학교, 양산학교, 보통학교, 배영학교, 유신학교를 차례로 설립하시어 신교육을 실시하시는 데 선구자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교육을 단순히 천주학이나 예수교에 대한 문제로 치부하지 않으셨고,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계층을 막론하고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것을 당시 국민들에게 요구하셨었습니다. 특히, 한일 합방 이후에 수많은 내외 관리들이 자살하고, 농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무지한 것에 대해 상당히 통탄해하셨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양산학교를 확장하고, 중소학부 학생을 증원시키는 등 교장으로서, 또한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실질적인 임무를 진행하셨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학문에서의 교육에서 발전하여, 총감부로 대표되는 왜에 비밀리에 도독부를 설립하여 맞설 것과 만주 이민계획을 확립하여 무관학교를 설립할 것, 또한, 정예장교를 육성하여 광복전쟁에 미리 대비해야하는 것과, 이를 위해서는 군사 교육이 선행되어야할 것을 선구안적 관점에서 주장하셨습니다. 위와 같이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숭고한 일생을 만인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었습니다. 국력은 지식의 힘에 기반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고 계셨고, 이와 같은 김구 선생님의 교육관은 아버지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과도 정말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에서 국가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하는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지식, 배움의 힘을 어릴 적부터 언급해 주셨고, 김구 선생님의 유년시절과 비슷하게 힘든 가정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교육을 위해 다방면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주셨었습니다. 특히 제가 육사에 입학한 이후에는 학교에서 접하는 모든 과정들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부탁하셨고, 그것만이 다시금 뼈아픈 과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임을 아들에게 강건한 어조로 말씀해주신 것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아버지께 다음으로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바로 김구 선생님의 독립에 대한 일편단심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셨던 과단력입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또 다시 투옥생활을 하시며 겪었던 고문을 백범일지에 고스란히 옮겨놓으셨고, 저는 그 고문이 서술된 부분의 잔혹함에 놀라 온전한 마음으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고문의 내용에는 크게 3가지가 있었고, 첫 번째는 천장에 매달고 구타를 한 뒤, 냉수로 정신이 들어오게 하는 것과 화로의 쇠막대기로 온 몸을 지지는 것이 담겨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식욕을 자극하도록 굶기는 방법을 택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특히 이 두 번째 고문에 대해서는 아내의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라고 표현하셨을 정도로 극도의 심적 혼란을 겪으셨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백범 일지에는 죄수에 대해 극진히 공경하고 대우하는 온화한 수단이 심리적 고문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백범일지를 통하여 당시 그 고통이 얼마나 참혹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가감 없이 말씀하셨지만, 오직 조국의 독립에 대한 일념 하나로 만들어낸 정신력을 더욱 크게 부각하여 글을 완성해 나가셨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문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망국노의 근성이 존재하지는 않는가하여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신 점, ‘나의 육체는 욕보일 수 있을지언정 나의 정신은 뺏을 수 없다는 오직 강인한 정신력 하나로 모든 고통을 감내하신 부분에서는 김구 선생님에 대한 저의 존경심이 절정에 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고문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마음을 강고하게 수양하여 고통과 함께 수반된 내적인 혼란과 육체적 한계를 일본은 조선을 영구 통치를 할 수 없다는 확실성으로 승화시키셨던 모습은 현인으로서 완성된 인품을 보여주신 사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강건한 정신력은 대한민국의 독립이 이루어진 이후까지 계속 지속되어 수많은 국민들의 귀감이 되어주셨습니다. 출옥 후, 농감생활을 하시면서는 소작인의 악습·악풍을 직접 개선시키시고자 간농을 요구하셨고, 소작인 준수규칙을 반포하고, 소작지에 대한 요청으로 들어오는 뇌물에 대하여 일절 거절의 뜻을 표명하시는 등 농민의 삶에 근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까지 고려하여 시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 기간 중 혼례나 장례의 성대한 의식으로 금전을 소비하는 금하셨고, 직접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이시며, 김구 선생님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더 많은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국민의 범위에는 김구 선생님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아들에게는 사회의 은택을 입어 먹고 배웠으니, 사회의 아들이라는 심정으로 사회를 부모처럼 효로 섬겨라는 말씀을 남기기도 하셨었습니다. 이 구절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정말 입이 닳도록 강조하셨던 말씀과 완벽히 일치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이따금씩 아버지께 생도생활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토로할 때면 아버지께서는 국민과 사회의 무한한 은택과 다방면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전무한 채로 의지박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느 도리에도 옳지 않음을 일러주셨었습니다. 이와 같은 구절을 백범일지에서 마주하며,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보고, 지금까지의 안일했던 생각과 저의 삶에 대해서도 상당한 후회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외의 부분에도 김구 선생님의 고매한 성품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에 제가 책을 읽으며 가장 심금을 울렸던 부분에 대해서만 그에 대한 내용과 저의 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나라의 특성과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정치 제도와 사상에 대한 연구와 실시를 평생에 걸쳐 실시하셨고, 3국가의 지도 및 명령을 통한 지배는 자존심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임을 강조하시며, 단일적인 단체, 합동 통일에 대해서도 그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역설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님께서는 5당 통일운동, 7당 통일회의의 지속적 추진 등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셨고, 광복군의 결성을 계획하셨으며, 광복 이후에는 삼남·서부지방을 순회 및 강연을 다니시며 국민들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렇게 민족의 지도자라는 수식어만으로 대변될 수 있는 김구 선생님을 백범일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근래에 들어 그 어느 것과도 비견될 수 없는 엄청난 감동이었고, 감동의 크기가 확대될수록 아버지와 이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만이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앞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백범일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고찰해볼 수 있었던 김구 선생님의 일생 동안 드러난 교훈과 의지는 아버지께서 매사에 제게 말씀에 주신 것과 어느 하나 상이한 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오직 국민과 국가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일념의 자세로 자신을 다잡아 과단력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이를 증명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를 반드시 국가와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는 목적을 지향점으로 삼아 군 생활을 해나갈 것을 강조, 그리고 또 강조하셨었습니다. 또한, 김구 선생님의 호인 백범의 뜻처럼 현재의 나 정도는 모든 국민들이 애국심을 가져야한다고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호언할 수 있도록 심적 수양을 영속적으로 해나갈 것과 지식과 배움은 끝이 없으니 학문과 교육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필요성도 함께 언급해주셨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로 하여금 김구 선생님과 같은 의인이 될 것에 대한 간곡한 부탁의 뜻을 표명하신 것이었고, 불효막대하게도 저는 이제야 백범 일지를 통해 아버지의 깊은 뜻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의식이 있으실 때,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였다면, 아버지께서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셨을 생각을 하니, 저의 마음은 더 큰 슬픔에 사무칠 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신뢰는 절대 불변할 것으로 아들은 절실히 믿기에 이해의 시기가 늦었던 만큼, 더욱 더 생도생활에 정진하여 아버지와 김구 선생님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저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성과 아버지에 대한 효()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저의 벗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 다시 일어나셔서 함께 백범일지를 비롯한 많은 책들에 대해 다시 예전처럼 부자간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버지, 조금만 더 힘내주십쇼. 사랑합니다.

 

20180429

아버지의 영원한 벗 민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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