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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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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에게 배우는 우리 겨레의 자취, 『백범일지』를 읽으며
작성자 심현석(강릉명륜고) 개최일 2018-05-30 조회 452

백범에게 배우는 우리 겨레의 자취, 백범일지를 읽으며

 

강릉명륜고등학교

3학년 6반 심현석

 

나는 책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책의 표지에 담겨진 백범의 얼굴을 바라보며, 실체의 공간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세대에게 해줄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저 쓸쓸히, 다만 무언가 터져 나올듯한 거대한 감정의 실타래를 침묵 속에 삼켜내며, 오랜 세월 끝에 그 형체를 완성한 망설임 없는 작은 미소를 건넬 것 같다. 이 무거운 세월의 역사가 압축된 단 한 권의 책 속에 지나간 수없이 많은 이름, 사건, 이념, 철학, 살생, 모든 것을 이해하고 헤아리기에 부족한 내가, 다만 묵묵히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기분을 살리자면 바로 이런 것이다. 정말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줄 몰랐다. 나는 역사 속의 한 위인이 남긴 책이니 읽기도 어려울 뿐더러 한자투성이일 거라 생각했기에,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책과 똑같이 평범하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덮고 큰 역풍을 맞으며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민족의 고된 아픔이 이렇게나 가까이 숨을 죽였는데, 그조차 관심을 갖지 못한 내 과거에게 안타까웠다.

 

백범이 있는 곳에는 배움이 있었고, 배움이 있는 곳에는 백범이 있었다. 그가 위축된 양반의 가문이라 해서 못날 것이 전혀 없었다. 일찍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스승 고능선에서 출발하여, 처음에는 전통적 우리 가치관 한 줌을 그의 손바닥에 담았다. 그는 감옥에 투옥된 후에도 배움이 배움을 낳는 행을 실천했다. 아직 일제에 나라의 주권이 완전히 빼앗기기 전부터 그는 만인의 스승이자, 훗날 지도자가 될 그릇이었다. 이미 성인의 법도를 걷는 영웅이었다. 그 후 백범은 숱한 고난을 육체로 직접 겪고, 완연한 목적지 없이 방랑하며 점차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배워갔다. 척양척왜를 모토로 살아온 그 역시 흥망성쇠의 최후 단계를 달리는 국가의 모습에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적이었던 구시대적 가치관을 손가락 사이로 조금 흘려보내며, 대신 좀 더 서양의 문물에 시각을 넓히고 틀림없이 진보한 제도와 문명의 일부를 수용하는 새로운 가치관 한 줌을, 손바닥 안쪽에 깊이 담아두는 것이 옳은 정세였다.

 

그는 스승 고능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문명국의 교육 제도를 본받아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교육하여 건전한 2세로 길러야 합니다. 또 애국지사들을 규합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 잃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라가 발전하는 복이 어떤 것인지 알도록 해야 합니다." 스승의 훈육은 백범의 과거에나 미래에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굳건한 지주였다. 그러나 전통적 가치관을 수호한 스승과 백범은 이 만남을 끝으로 영원히 결별하였다. 새로이 나서는 길 앞은 다시 기다리는 암담한 고문일 뿐이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수호하든, 교육자로서의 삶은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감옥에 갇혔다. 그 역시 한 인간이기에 그릇된 마음을 먹은 순간이 있었음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한번 쥔 주먹은 그의 의지를 뒷받침했다. 거기서 도적단에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비밀결사가 유지될 수 있는 비결, 지휘의 과정에 대해 배웠던 광경이 꽤 인상 깊었다. 도적단의 이름이 '목단설', '추설'이라는데, 외워둬야겠다.

 

시간이 흘러 국가는 빛을 잃었고, 일제의 강점 아래 반상의 자취에는 피와 눈물이 만연하는 시대가 되었다. 19193, 독립선언서가 각 지방에 배포되며 우리 겨레는 있는 힘껏 만세를 외쳤다. 여러 번 외쳤다. 헌병의 감시를 피하며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뜻 있는 해외의 동포들과 의견을 모은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백범은 원래 단순히 임시정부의 문지기로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주변인은 그를 더욱 높은 곳으로 추대하였으니, 결국 시대는 그를 위인이 되는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조직된 임시정부 활동에는 일본의 끊임없는 수색과 조사로 종종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그를 보호해주던 '불란서 조계지'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그는 아내의 죽음에 끝까지 함께할 수 없는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자금이 없어 중국인과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 역시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에 강력히 항거한 의사들의 업적으로 인해 임시정부는 세간의 이목의 집중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금도 넉넉히 모으고 전보다 손을 건네는 조력자들도 늘었지만, 이 사실에는 의사들의 희생정신이라는 분명한 뼛속 깊은 아픔이 존재함을 인지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다행이라 하고도 슬플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백범일지를 읽으며 재밌는 부분은, 역사책에선 자세히는 알 수 없었던 백범이 만난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쾌활하기도 하고, 슬픈 시대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는 모습이 많았다. 표면적으로라도 말이다. 의지를 가졌음에 당위적인 일을 할 뿐인 그 용기들 역시 볼만 하다. 백범이 그날그날 만난 사람들이 했던 말을 일일이 기록해놓는 건지, 이들이 하는 대사 역시 상세하다. 당시 백범이 만난 이봉창 의사가, 사진관으로 가 사진을 찍기 전 백범에게 건넨 말이 인상 깊었다. "저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 백범은 윤봉길 의사와도 만났다. 그때 백범은 스승 고능선에게 배웠던 말을 인용하여, "벼랑에서 잡은 손마저 놓는 것이야말로 대장부"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배운 것은 잊지 않고 삶에 적용하여, 그 배움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삶이 되는 백범의 인생관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항거가 이어진 후 백범은 원래 살던 곳에서 피난을 가야 했는데, 미국인 피치 부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리저리 몸을 숨기는 삶 속에서도, 유능한 관제탑으로서 독립 의지를 보이며 임시정부의 사업은 분명히 세계를 향해 똑똑히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일제의 수탈은 날로 심해져가고, 점점 오만해지더니 결국 점점 더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벌이는 쪽으로 판국이 흘러갔다. 백범은 불란서 조계지를 벗어나 먼 길을 걸으며 이름과 신분 모두 숨기는 일촉즉발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당시 남겼던 그의 말은 이렇다. "청년들은 중국 정자와 주자의 방귀조차 향기롭다는 옛사람들을 비웃지만, 같은 입과 혀로 러시아 레닌의 방귀는 '달다' 하니, 정신 차릴지어다. (중략) 우리나라에 맞는 주의와 제도를 위해 머리를 쓰는 자가 있는가?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이미 국제 정세도 파악하고, 독립 운동을 펼치며 그동안 우리나라의 재건립을 위해 많은 공부를 해온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를 한평생 묵묵히 지지하고 그에게 있어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 후 그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했다. 이 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서, 우리 힘을 키우고 우리 힘으로 맞서 싸워 우리가 이 시대를 종결시켜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1945815일 일제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우리나라는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다. 백범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 할 정도였고, 좋긴 좋은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문제가 훗날 38선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가 둘로 완전히 나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자주 독립은 아니었지만 우리 민족이 이제 일제를 물러내고 새 국가를 건설하게 된 것은 더할 나위없는 기쁨인 것은 분명했다. 긴 중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감격스럽게 돌아온 백범은 동포들의 무한한 환영을 받았다. 그가 과거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에도 가보고, 머리를 깎고 들어갔던 절에도 가보고, 그가 수감되었던 감옥이 있는 인천 주변도 가봤다. 부산에서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골 봉환식을 거행했다. 크게 굴곡졌던 그의 인생을 한껏 돌아보며, 그는 하권의 집필을 마쳤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앞둔 와중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암살되었으니, 그의 마지막 결말은 사실 꽤나 허무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 강점 도중에 사망하여 독립된 한국이 건설될 시기에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 백범은 광복 이후 두 이념이 합일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떠난 위인들의 길로 돌아섰다. 한국전쟁 이후, 오늘날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의 길을 도모하기 위해 겨우 찾아온 이 기회 앞에서, 내가 그린 백범의 모습은 이제야 다시 웃음을 터놓는 것이다. 마음껏 터놓는 것이다. 너무 늦었다. 김구가 그토록 바랐던 '자주 독립'이 성립되는 순간이 곧 오지 않을까.

 

백범일지를 읽으며 이제야 나는 김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은 김창수, 김구, 백범을 몰랐던 것이다. 그가 남긴 '나의 소원'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라면 필히 읽어야 할 뜻깊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만 딱 떼어놓고 일반인에게 읽으라고 해도 사실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오늘날처럼 정치도 어지럽고 외교도 어렵고 그런 와중에, 여전히 백범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단군의 홍익인간을 모티브로, 우리의 문화는 인류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인자하고 어진 덕을 행할 것을 강조했다. 외국의 많은 제도와 문명은 좋은 것을 수용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적절히 변화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국제 사회의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여기에는 백범이 설정하는 국가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곳에는 자유, 평화, 그리고 자주 독립의 의지가 있다. 현재 우리도 큰 국면 앞에 놓여 있지 않은가. 때마침 평화통일에 한걸음 다가선 이 타이밍에 백범일지를 읽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겨레의 큰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우리 문화의 발전에 앞장서는 그런 젊은이가 되어라. 우리가 그런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백범에게 배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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