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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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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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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구가 꿈꾼 통일한국, 21세기에 실현되다
작성자 이규호(휘문고) 개최일 2018-04-11 조회 694

김구가 꿈꾼 통일한국, 21세기에 실현되다

 

휘문고등학교

1학년 5반 이규호

 

우리나라 광복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백범 김구이다. 그는 당대에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최고의 위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인생에서 세 번의 실패를 겪는다. 첫째는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했지만 일본군과 조선 관군에 의해 탄압당한 것이다. 둘째는 임시정부를 이끌던 시절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작전을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폭으로 일본이 항복해버린 것이다. 셋째는 주체적인 통일 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암살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실패는 우리에게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준다. 우리는 그의 진정성 있는 고백인 백범일지를 통해 그의 사상과 정신을 배울 수 있다. 나는 김구라는 한 인간과 우리 역사를 더 빛나게 해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1. 인간미 넘치는 무장 투쟁가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창암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나 평생 자신의 삶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1949년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그는 17세에 과거에 응시했지만 관직을 사고파는 부패한 세태에 실망한다. 그의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삶은 동학에 입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름을 김창수로 바꾸고 의병활동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18963, 치하포에서 일본인 육군 중위 스치다를 만난다. 일본인에게 참혹하게 살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그를 살해하고, 당당히 자신의 거처와 성명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났다. 이는 그의 인생을 바친 항일투쟁의 시발점이 된다. 이 사건으로 김창수는 체포되고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이듬해 탈옥에 성공하였다. 그 후 방랑을 하다 이름을 김구(金龜)’로 바꾸었다. 그 후 데라우치 총독 암살모의 등과 연루되어 다시 투옥되고 옥중에서 호를 백범(白凡)’으로 정하고 이름을 김구(金九)’로 다시 바꾸어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더 굳게 다졌다. 19193.1 운동이 일어나고 상해로 망명하여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는 가장 낮은 사람인 문지기가 되기를 청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지지로 경무국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무장투쟁이 절정에 이른 것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하면서부터이다. 1932년 단원인 이봉창, 윤봉길이 의거를 거행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전 세계에 한국민이 독립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장개석을 만나 독립운동을 지원받으며 군사훈련에 돌입하고 임시정부 주석에 오르며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항일공동작전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자주독립을 성취하고자 하였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항복으로 결국 자주독립이 아닌 광복을 맞이한다. 이후 러시아와 미국의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의사를 펼치며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에 다녀오는 등 통일정부를 만들기 위해 힘썼지만,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며 통일한국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찬란했던 삶을 끝마치게 된다.

 

 

2. 자유의 나라를 꿈꾸다

 

김구가 꿈꾼 나라는 자유가 있는 나라였다. 자유가 있는 나라란 개인들이 제 멋대로 사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국가는 규범으로 개인들의 자유를 속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갖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김구는 개인을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자유가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가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 어떤 한 개인이나 한 계급에서 온다. 법이 한 개인에서 오는 것을 독재라고 하고 한 계급에서 오는 것을 파시즘(전체주의)이라고 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하나의 계급을 제외한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라고 김구는 표현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는 물론 당시 공산 독재를 펼치고 있던 소련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그는 유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양반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이라는 계층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수백 년 동안 계속 되었으니 이것 또한 일종의 계급독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조선에서 행한 계급독재는 철학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 규제를 했다. 이에 조선의 국민들은 언론의 자유를 얻지 못했고, 다양한 학문이 발달하지 못했다. 이렇게 김구는 우리 민족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과거의 실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당시 우리나라 또한 다른 여느 나라들처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분열되고 있었다. 김구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민주주의로 통일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소련식 민주주의가 독재의 극단이며 이러한 정치체제가 세계에 퍼진다면 전 인류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상을 억압하고 마르크스의 학설에 대한 비판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같이 어느 한 학설을 기준으로 삼아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을 부당한 행위로 보았다. 실제로 남북 분단 이후에도 남과 북에서 서로의 사상을 탄압하였다. 남한에서도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하고 대학생들을 고문하고 죽음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얼마나 큰 부정적 결과를 야기하는지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반면에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느려도 누구나 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토론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의견이 정리되고 다수결의 방법으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하나의 절차 또는 방식이다라는 것이 김구의 결론이었다. 그는 특히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를 통해 백성이 나라의 주권자가 되며 국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민주주의를 베껴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만의 정치양식을 건립하자고 역설했다. 우리에게 맞는 옷이 있듯, 우리에게 맞는 우리만의 사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문화 교육이 중요하다. 문화를 교육하는 나라가 자유와 행복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국론을 만드는 큰 의견은 국민성과 신앙과 철학으로 결정된다. ,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문화와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려야 하며 화합해야 한다. 또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행복은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떤가? 남북통일은커녕 남한에서조차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끊임없이 대립하고 분열하며 우리 정치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통합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3. 통일 대한민국,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

 

김구가 죽고 난 뒤 약 7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남과 북이 하나 된 생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분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광복 이후 혼란 속에 있던 국민들이 다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시기에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사상의 차이 때문이었다. ‘평등을 중시한 사람은 북으로, ‘자유를 중시한 사람은 남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 가치만 추구하자, 한계가 발생했다. 북한은 사회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독재라는 부작용이 생겼고 진정한 분배는 실현되지 못했다. 자유를 추구하던 민주주의자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폐단이 낳은 양극화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수저계급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평등자유중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 두 제도의 좋은 점만 취해 통일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김구 선생 또한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나라를 꿈꿨지만 이 자유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민통합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남북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20001차 남북정상회담, 20072차 정상회담 후 10년이 넘었지만 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빨리 남과 북에서는 정상회담을 계획하여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 사람들이 교류를 지속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최근 개최된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남한, 북한이 아닌 코리아라는 단일팀을 이루어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을 하였다. 단일팀은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결성되었다는 시기적 실수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올림픽, 월드컵과 같이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는 대회에서 단일팀을 만들어 나간다면 남과 북이 서로 한민족 한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남북 국민들 사이에 있는 편견의 프레임을 서서히 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남북이 갖고 있는 편견은 민족 사이에 있는 마음의 벽이다. 그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통일을 향해 꼭 해결해야하는 숙제이고 통일을 향해 내딛는 아주 큰 한걸음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물고 경제 격차를 줄이며 정치적 방향성 또한 차근차근 합의해 나가야 한다. 자유롭지만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바로 김구가 꿈꾼 나라일 것이다. 김구는 생전에 그러한 국가를 보지 못했지만 실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만약 모든 국민이 자유로운 사상을 누리고 서로 화합한다면 자유와 행복의 나라는 자연스럽게 건설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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