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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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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를 찬찬히 읽어보다
작성자 신혜빈(조종고) 개최일 2022-11-25 조회 391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를 찬찬히 읽어보다


조종고등학교

2학년 3반 신혜빈

 

백범일지는 나에게 더욱 깊은 생각을 가지게 해 주기도 했고,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 내용에서는 애국정신을 주기도 했다. 이 백범일지로 말하자면, 한국의 역사적 인물 중 한 분인 김구 선생이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살아온 내력을 알리자는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19976 12 일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된 책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부터 책과 관련해 자주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았다면, 나라를 위해 두발 벗고 나서서 독립운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독립운동을 했을 거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었는데, 백범일지는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백범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 본명은 김창암이다. 그런 김창암의 조상은 대대로 글과 벼슬로 가업을 삼고 있었지만, 김자점이라는 김창암의 조상이 청나라와 내통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고, 김창암의 가족들은 황해도로 도주해 해주에 정착하게 된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개구쟁이라는 단어와 딱 어울렸다. 가족 몰래 헌 수저와 엿 한 뭉텅이를 바꿔서 먹기도 하고, 아버지가 숨긴 엽전 스무 냥을 훔쳐 떡을 먹으러 가다 혼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김창암의 생각을 바꾸게 한 일이 있었는데, 집안 어르신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 발단이다. 몇 해 전, 문중에 새로 혼인한 집이 있었는데, 그 집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사돈을 보러 가다 양반들에게 발각되어 봉변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김창암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야 진사가 될 수 있냐 어른들에게 물었고, 과거를 보면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과거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과거 급제를 위해 아이들을 모아 이 생원이라는 양반을 선생으로 모셨고, 학구열이 높았던 김창암은 공부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마비 증세로 인해 김창암은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전폐하고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엄청난 절망감에 빠졌을 것 같다.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기뻐함도 잠시, 아버지의 몸이 좋지 않아져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첫 번째 슬픔과 아버지의 마비 증세로 인한 두 번째 슬픔이 겹쳐 더욱 슬프지 않았을까 싶었다. 

옹색한 집의 가산을 다 털어, 반신불수로 조금은 호전된 아버지를 본 김창암은 고향으로 되돌아왔고, 그는 다시 과거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시험의 불의한 모습을 본 그는 과거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관상 공부와 풍수 공부를 하기로 했다. 김창암은 상서를 읽고서는 자신의 관상이 궁금해져, 관상론을 공부하며 자신의 상을 관찰해 보았다. 그랬더니 자신 얼굴엔 귀격이나 부격 등 좋은 상은 한 군데도 없고, 천격과 빈격, 흉격만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이때 김창암은 상서의 이런 구절을 보았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그는 이 문장을 보고 자신은 관상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내가 마음 좋은 사람을 보기보다는 얼굴 좋은 사람을 보기에 급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사람의 마음을 보기 전부터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 이런 사람은 싫다 좋다를 구분했던 것 같은데 상서의 구절을 보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백범 김구 선생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후 김구는 동학에 입도하게 되었다. 빈부귀천에 차별대우가 없다는 말은 김구가 별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김창암이라는 이름에서 김창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때도 이즈음이다. 애기접주로 활동하던 시절, 정권이 동학인들을 탄압하고, 토벌하게 되어 김구는 안 진사의 집에서 은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안 진사의 아들, 큰아들인 안중근과 만나게 되었다. 

이후 중국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때 1895년 을미사변이 벌어졌다. 을사늑약이 이루어지고, 한일병합조약이 이루어지는 등 여러 큰일이 닥치게 되었다. 그러나 19193·1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의 소식을 듣고, 상해로 떠나기로 결심 후 배를 타고 상해로 출발하였다. 이튿날, 김구는 이동녕, 이광수, 김홍서, 서병호 등에게 차례대로 방문해 악수하였고, 이때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 그는 도산 안창호에게 정부의 문지기를 시켜달라고 청원했다. 흔쾌히 수락한 도산 안창호는 다음 날, 김구에게 경무국장 취임을 권했다. 김구는 부득이 응낙하고 취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왜 문지기를 하고 싶다고 청원한 거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자신이 독립정부가 조직되거든 정부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것이 소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독립을 원한 마음이 훅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그가 재무부장이면서 민단장을 겸임할 때였다. 이봉창 선생이 임시정부로 찾아왔고, 1년 후 일황을 저격했으나 명중은 되지 않았다. 이후 윤봉길 의사와 만났고, 윤봉길 의사는 홍구공원에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을 던져 여러 명을 즉사 및 중상을 입히는 등의 대성과를 냈다. 그로 인해 장개석에게 지원 약속을 받게 됐다. 이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자 김구는 연합군과 손을 잡게 되고, 김원봉까지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되며 광복을 꿈꿨다. 그 꿈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김구 선생은 기뻐하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그는 조국으로 귀환해 지방 순회를 다니며, 인사와 강연을 다니다 생을 마감했다.


나는 다 읽은 후 백범(白凡)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 조사해 보았고, 뜻을 알게 된 이후 김구 선생의 독립을 위한 마음이 더 깊게 느껴졌다. ()은 백정의 첫 글자를 딴 것이며, 소나 개, 돼지를 잡는 직업을 뜻한다고 한다. ()은 범부의 첫 글자로, 보통의 사내를 뜻한다고 한다. 백정,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을 나의 정도는 되고야 완전한 독립 국민이 되겠다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내가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봉창 의사의 말과 김구의 나의 소원 구절이 아닐까 싶다. 이봉창 의사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으로는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렵니다. 그래서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겠다는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부분이다. 이봉창 의사의 말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 국가의 독립이 곧 자신의 쾌락이라며,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의 구절은 김구 선생의 애국심,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울림이 있었다. 하느님이 네 소원이 뭐냐고 묻는 말에 우리나라의 독립이라고 말하는 것, 다음 소원도 독립, 그다음 소원이 뭐냐고 물을 때 더욱 소리를 높여 자신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말한다고 하는 구절이 나의 소원 중 가장 와닿는 구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나라 없는 설움을 느낄 일이 없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그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얼마나 소망했는가를 확실하게 느낀 부분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라가 통일되고 자유로우며 높은 문화를 가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세계평화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소원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21세기에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아 있고,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다른 나라의 이름으로 된 우리의 땅을 밟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들이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졌고, 이러한 자유를 평화롭고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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