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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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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다짐하니 초목이 알더라
작성자 황민정(백제고) 개최일 2018-09-10 조회 31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다짐하니 초목이 알더라

 

백제고등학교

1학년 4반 황민정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다짐하니 초목이 알더라.”라는 표현은 백범 김구가 독립운동을 할 때에 즐겨 낭독하던 충무공 이순신의 시구이다. 백범 김구는 충무공 이순신의 구국정신 즉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고 구하려는 정신을 이르는 말을 본받고자 하였으며 바다에 맹세하고 산에 다짐하면 어룡도 움직이고 초목도 안다는 내용을 담은 위의 시구로 독립을 향한 자신의 의지가 확실하게끔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는 푸른 밤송이에서 붉은 밤 하나라는 비범한 태몽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고 스승인 고능선의 가르침을 받고 나라를 위하여 의병활동을 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여 청나라로 떠나게 된다. 백범 김구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 치하포로 향하던 중 승선한 배가 빙산에 부딪혀 인근 강기슭에서 내려 어느 주막에서 밥을 먹고 머무는 사이 일본인 쓰치다를 조선의 국모 명성왕후를 살해한 범인으로 판단하고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러한 행동을 성급하고 어리석었다고 나무라야 하는가, 아니면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억압당한 조선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정당한 복수의거라 인정해야 하는가에서 관점이 갈라진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고서 그의 결단력과 판단력에 순수하게 감탄하였다. 빠른 상황판단은 물론 일제를 향한 백범 김구의 입장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현장에 본인의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자신이 행한 일을 인정하고 후에 책임을 지겠다는 속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치하포 사건을 통하여 김구는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오히려 재판장에서 당당하고 굳센 모습으로 임하였다고 하니 독립운동가로서의 첫 발을 크게 걸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백범 김구의 생애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무국장으로 있던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대한의 정부가 세워진다면 그 앞마당이라도 쓸고 싶다고 생각한 그에게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라는 지위는 어떠하였을까. 그 때는 비록 임시일지라도 엄연히 대한의 정부가 생긴 순간이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여러 방면으로 도운 곳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족의 방향성 때문에 크게 흔들렸고 인력난과 재정난으로 인해 무정부에 가까운 시기를 보내던 순간에서도 김구는 임시정부를 떠나지 않았고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여 주었다.

 

백범 김구는 자신을 찾아온 이봉창에게 거액의 독립 자금과 위로를 전해주었는데 이봉창은 의거를 행하기 전 그저께 제가 선생님께서 다 헤진 옷 속에서 많은 돈을 꺼내가지고 주는 돈을 받아가지고 갈 때 눈물이 났습니다...

(중략)

선생은 내가 이 돈을 가져가서 내 마음대로 써도 돈을 찾으러 올 수 없을 터인데 과연 영웅의 도량이구나. 제 인생에서 이런 신임을 받은 것은 선생께로부터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라고 김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백범 김구는 자신이 입고 있는 헤진 옷을 걱정하지 않고 목숨을 조국에 바치는 독립운동가들의 의거가 성공적이기를 간절히 바라였기에 배부른 한 끼의 식사보다 역사를 바꿀 한 번의 기회와 순간을 원했고, 이봉창의 말대로 독립이라는 담대한 꿈을 가진 영웅의 도량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어 무기와 전투 시 비상식량을 들여와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일제의 항복과 동시에 대한의 독립을 맞이하였을 때도 김구의 심성과 예리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안일하게 광복을 기뻐하지 않고 나라의 힘이 약해 다른 열강들의 간섭을 받게 될 것이라 예측한 그는 깊이 통탄하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자주 독립이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였는데 눈앞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그러한 김구의 기분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좌절도 잠시 갑작스러운 광복을 맞이해 혼란스러운 대한을 위하여 빠르게 귀국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진정시키고 독립운동가들의 유가족을 위로한 일이였다.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네고 대한의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진정 이상적인 모습의 지도자였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또한 백범 김구는 다른 열강들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두 민족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며 남북 간의 통일과 통일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두 민족의 문화의 힘이 어우러져 세계적으로 알려지길 바라였다.

 

백범 김구는 한평생을 조국의 자주 독립이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인 듯이 살아왔으며 광복 후에는 남북의 통일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썼다. 남한만의 독자적인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만약 그의 바람대로 남북 간 통일 정부가 수립 되었다면, 한국광복군의 진공작전이 성공하였다면 대한이 김구의 소원대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해 내었다면 지금의 대한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그가 바란 대한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백범일지를 읽던 중 자연스럽게 나의 소원이라는 김구의 또 다른 글을 읽게 되었는데 자주 접해 익숙했던 글이 백범일지속에서 만난 김구의 입장에 서서 다시 읽으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토록 애절하고 절절한 소원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일제의 재판에서 당당하게 임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 든든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싶은 확신이 가슴 한 구석을 뜨겁게 만들었다.

 

백범일지를 읽음으로써 나와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몸 바쳐 사랑하고 있는가. 진실 된 하나의 가치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남북 간의 통일과 통일 정부수립을 위하여 진정 힘쓰고 있는 것인가. 나라의 지도자는 민심을 다스리고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가. 나아가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기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가.

 

자신의 삶 전체를 조국과 민족과 통일을 위하여 바친 백범 김구의 삶은 가히 민족의 아버지라 불릴 만 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우리 사회는 김구와 같이 진정성과 결단력 있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며 애국심을 가지고 지나간 역사를 지키고 기억해야 한다. 또한 하루라도 빨리 남과 북의 통일을 이루어 서로가 가진 높은 문화의 힘으로 세계적인 나라가 되게끔 힘써야 한다. 이는 나의 뜻이자 백범 김구의 뜻이며 현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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